막부의 통상조약 방침

에도 막부의 통상조약 추진을 가로막은 두 가지 주요 장애물을 다룹니다. 고메이 천황의 강력한 반대와 13대 장군 사망 후 발생한 권력 승계 문제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고메이 천황의 강력한 반대


막부가 미국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고메이 천황의 강력한 반대였습니다.

고메이 천황은 일본을 ‘신국(神国)’으로 여기며, 서양의 ‘오랑캐’들이 일본 땅을 밟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천황은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막부에 지속적으로 쇄국 정책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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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내부의 권력 승계 문제

또 다른 중요한 장애물은 13대 장군 이에사다의 후계자 문제였습니다. 1858년 이에사다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14대 장군 선출을 둘러싼 막부 내부의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승계 문제를 넘어 막부의 향후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고산케(御三家)와 장군 계승 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설립한 에도 막부는 장군직의 영속적 계승을 위해 고산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고산케는 이에야스의 9남, 10남, 11남의 가문인 기이번, 오와리번, 미토번을 지칭합니다.

이 제도는 장군의 후사가 없을 때 이 세 가문 중에서 적임자를 선택하여 장군직을 계승하도록 했습니다.

14대 장군 선출을 둘러싼 갈등

13대 장군 사망 후, 후계자 후보로는 기이번의 이에모치와 미토번의 요시노부가 거론되었습니다. 12세의 이에모치는 혈통상 유리했지만, 나이가 어려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반면 21세의 요시노부는 총명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혈통상 불리했습니다.

정책 방향을 둘러싼 대립

14대 장군 선출 문제는 단순한 승계 문제를 넘어 막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에모치를 지지하는 세력은 개국을 찬성했고, 요시노부를 지지하는 세력은 개국에 반대했습니다.

결론

막부의 통상조약 방침은 고메이 천황의 강력한 반대와 막부 내부의 권력 승계 문제라는 두 가지 큰 장애물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의 개국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막부의 정책 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정책 결정을 넘어 일본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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